[커피 등급 분류]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의 미학: 수프리모와 엑셀소를 구분하는 결정적 차이

규격과 표준, 유통의 기본이 커피에 닿을 때

현역 시절, 유통과 물류의 핵심은 언제나 ‘표준화(Standardization)’에 있었습니다. 규격이 일정한 상품은 신뢰를 낳고, 그 신뢰가 시장의 가격을 결정하죠. 커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퇴 후 커피의 화학적 조성과 로스팅의 매커니즘을 파고들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 바로 이 ‘스크린 사이즈’ 분류법이었습니다. 거대한 유통망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오는 콜롬비아 생두가 왜 수프리모와 엑셀소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물리적 진실과 로스팅의 실전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커피 생두(Green Bean)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은 생산 국가마다 상이하다. 에티오피아는 결점두(Defect)의 개수를 기준으로 G1, G2 등으로 나누고, 코스타리카는 재배 고도(SHB, HB)를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인 콜롬비아(Colombia)를 비롯해 브라질, 케냐 등 다수의 국가는 생두의 물리적 크기인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를 등급 분류의 척도로 사용한다. 본 글에서는 스크린 사이즈의 정의와 측정 원리, 그리고 콜롬비아 커피의 양대 산맥인 **수프리모(Supremo)**와 **엑셀소(Excelso)**의 등급 결정 기준을 분석한다.

커피 등급에서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 분류법과 콜롬비아 수프리모와 엑셀소의 물리적 크기 차이를 설명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 분류법: 콜롬비아 수프리모와 엑셀소의 물리적 크기 차이 분석을 설명하는 이미지

1.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1/64인치가 만드는 등급의 문법

스크린 사이즈란 타공된 금속 체(Sieve)를 통과하는 생두의 입자 크기를 의미한다. 국제 커피 업계에서 통용되는 스크린 사이즈의 기본 단위는 **1/64인치(inch)**다. 즉, ‘스크린 1’은 1/64인치(약 0.4mm)를 뜻한다.

등급 분류 작업은 서로 다른 구멍 크기를 가진 여러 개의 체를 수직으로 쌓아 놓고, 생두를 투입한 뒤 진동을 주어 크기별로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스크린 18: 18/64인치 (약 7.14mm)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은 생두
  • 스크린 17: 17/64인치 (약 6.75mm)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은 생두
  • 스크린 15: 15/64인치 (약 5.95mm)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은 생두

숫자가 클수록 생두의 알이 굵고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스크린 사이즈가 클수록 높은 등급으로 거래된다.

유통인의 시각에서 볼 때, 스크린 사이즈는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상품의 예측 가능성’입니다. 규격화된 생두는 대량 거래 시 품질의 균일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지표가 됩니다.

2. 콜롬비아 커피의 등급 분류 체계: FNC 기준

콜롬비아 커피 생산자 연합(FNC, Federación Nacional de Cafeteros de Colombia)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스크린 사이즈에 따라 수출용 커피의 등급을 명확히 구분한다. 가장 대표적인 등급은 **수프리모(Supremo)**와 **엑셀소(Excelso)**다.

수프리모 (Supremo)

콜롬비아 커피의 최상위 등급이다. 스크린 사이즈 17(6.75mm) 이상의 생두가 95%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알이 매우 굵고 균일하며, 시각적으로도 풍성한 느낌을 준다. 로스팅 시 열을 고르게 받아 안정적인 향미를 표현하기 유리하다. 일부 프리미엄 라인에서는 스크린 18 이상만을 선별한 ‘수프리모 18’이 유통되기도 한다.

엑셀소 (Excelso)

수프리모 다음 등급으로, 수출용 커피의 표준(Standard)이 되는 등급이다. 스크린 사이즈 14(5.55mm)에서 16(6.35mm) 사이의 생두가 주를 이룬다. 수프리모에 비해 알의 크기는 작지만, 향미적으로 품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엑셀소 등급 안에서도 크기에 따라 EP(European Preparation, 스크린 15 이상)와 UG(U.S. Preparation, 스크린 14 이상)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3. 생두 크기와 향미(Cup Quality)의 상관관계

일반적으로 “생두가 클수록 맛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명제다.

  • 크기의 이점: 같은 나무에서 자란 커피라면, 알이 굵은 생두가 영양분을 더 많이 흡수하여 당분과 유기산 함량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크기가 클수록 로스팅 시 타지 않고 내부까지 골고루 익히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 크기의 한계: 생두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밀도(Density)’**다. 에티오피아나 케냐의 고지대에서 생산된 커피는 알이 작아도(스크린 14~15) 밀도가 매우 높아 강렬한 향미를 뿜어낸다. 반면, 저지대에서 생산된 커피는 알은 크지만(스크린 18 이상) 밀도가 낮아 맛이 밋밋할 수 있다.

지대에서 자란 엑셀소 EP 등급은 비록 크기는 수프리모보다 작을지언정, 세포 조직이 치밀하여 훨씬 폭발적인 산미와 복합적인 향미를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크기에 매몰되지 않고 생두를 한 움큼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색상을 살피는 ‘현장의 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4. 로스팅 관점에서의 중요성: 균일성(Uniformity)

로스터에게 스크린 사이즈 분류는 맛 그 자체보다 ‘열역학적 균일성’ 때문에 중요하다. 크기가 제각각인 생두(Unsorted Bean)를 한 번에 로스팅하면, 작은 콩은 금방 타버리고 큰 콩은 덜 익는(Under-developed) 현상이 발생한다.

수프리모나 엑셀소처럼 철저하게 크기별로 분류된 생두를 사용하면, 로스팅 머신 내부에서 모든 콩이 동일한 속도로 열을 흡수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취(Off-flavor) 없는 깔끔한 커피를 생산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5. 결론: 1mm의 차이가 만드는 조화로운 한 잔

과거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때 제가 강조했던 ‘디테일의 힘’을 커피 생두에서도 발견합니다. 수프리모와 엑셀소를 가르는 그 미세한 1mm의 차이는 로스팅 머신 안에서 열과 반응하며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죠.

결국 등급 명칭은 가이드일 뿐, 그 콩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로스터의 몫입니다. 은퇴 후 이 작은 콩 한 알 한 알이 가진 물리학과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며, 저는 유통 현장에서 미처 다 보지 못했던 ‘본질’을 매일 아침 커피 잔 속에서 만납니다. 여러분의 커피 취향은 어느 쪽인가요? 크기의 풍요로움인가요, 아니면 작은 알 속에 응축된 밀도의 강렬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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